Sunday, 27 March 2011

패배자

자신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한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자업자득이라고, 내가 한만큼 밖에 거둬들이질 못한다. 거둬들이는게 거의 없지.

사람들틈에서 패닉에 걸릴때가 있어. 어찌해야할지 당황스럽고 내모습이 뭔가 잘못된거 같고, 누군가의 SOS를 애타게 기다리고있고.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기뻐하면 그 틈에 끼질못하고. 항상 여유가 없으니까. 내 자신이 너무 외롭고 가여워보이기만 하고.

다시 내 외모에 미안하다.
괜찮은 외모인데 정신이 받쳐주질 않아. 내면이 너무 좁고 허약해. 항상 자신감없고 힘없는 말투에 소극적인 행동에  아무런 매력이 없어. 보여줄수 있는게. 보여줄거라곤 그저 내가 한심한 놈이라는거 대화할 자신이 없는 놈이란거. 그리고 재미없는 놈이란거.


니가 얘기했었잖아. 한번 뿐인 인생 불꽃같이 살다 가라고. 그럴 재주도 없으면서 말야. 외로움을 이겨내고 사회의 냉소어린 시선을 이겨낼것 처럼 얘기해놓고.

Tuesday, 22 March 2011

내가 생각한 내 모습

사람들과 시원시원하게 얘기못하는 건 너무 움츠려든 나 자신때문이다. 내가 너무 작게보여서. 감히 다른 이들을 편하게 대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 움츠려든 나/너무 작게 보이는 나

그 모습이 싫어 변해야한다고 몇번이고 다짐하지만, 구부러지지 않는 숟가락처럼 단단해 보여서 선뜻 자신이 서질않아.

숟가락은 없다

‎"숟가락을 구부리려 하지마. 그건 불가능해. 대신에 진실을 알려고 노력해봐."
- 무슨 진실?
"숟가락은 존재하지 않아."
- 숟가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휘어지는건 숟가락이 아니라, 단지 자신임을 알게될거야."

- 영화 매트릭스에서

Saturday, 5 March 2011

챙겨주지 못하는 이유

남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남을 챙겨주지 못한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사람들틈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현실의 제자리로 왔을 때, 그닥 관심없는 사람들틈에서 고립되지 않으려고 많은 신경을 쓴다. 그닥 흥미없는 얘기에 귀기울여주고, 흥쾌한 리액션은 없어도 건성으로나마 반응하며 들어준다. 그리고 대화는 쉽게 끊긴다.

절대 누구를 챙겨줄수가 없다.

어쩌다 남을 챙기려해도 빈곤한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이토록 외롭고 안쓰럽게 사는데, 안그런척 밝게 남을 대하고 관심을 가져주는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밥먹으러 갈때, 앨리베이터 안, 밥먹는 와중 참 어색하고 불편하게 짝이 없지. 할말도 없고, 남이 하는 말도 별로 구미가 안당기고. 그래도 어색한 침묵보단 얘기를 듣는편이 훨 수월하니 들어는 보는데 눈빛에 풍기는 지루함 혹은 어색한 흔들림을 숨길순 없다.

빈곤한 관계속에서 외로움을 느끼지만 적어도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은 버리게됬다. 가해자도 아니다. 그저 챙겨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연하와 친해지지 못하는 이유.

솔직히 아래 사람들이 두렵다.
그들이 가진 도전적인 눈빛이, 자기중심적인 의견제시도, 무엇보다 그들과 교감하기 힘들어서 두렵낟.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는건
연상인 사람들이 던져주는 느낌이 없기 때문아닐까.

느낌이란
나를 감싸주려는,
나를 배려하려는,
내게 귀기울여 주려는,
즉, 나를 챙겨주려는 느낌말이다.
챙겨주니까 내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거다.

밑에 애들은 챙김을 필요로 한다.
챙기지 못하기에 그들과 친해질수 없는거다.
여자들도 마찮가지다.
연애못하는 이유도 말야.

내가 안모과장님을 배려하지 못하는것 처럼,
가끔 화나가서 그에게 보란듯이 인상을 쓰는 태도처럼,
아래 사람은 윗 사람을 챙겨주지 못해.

사무실에서 내 밑으로 있는 세명의 사원들과도 가까워지려고 할수록 어색해지는 복잡 미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창 배워가는 사원시절 이런 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때론 논쟁을 통해 싸워나가고 이 자체로 사회생활에서 부족한점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리란 직급에 올라왔고, 내 밑의 사람들이 하나둘 불어나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더는 행동할수 없다고 느낀다.

밑에 사람에게 권위적으로 지시를 내리기 싫어 가능한 공손하게 얘기하려하니 오히려 관계를 불편해졌다. 어렵게 말을 놓은 누군가와도 금방 어색해졌다. 그들과 교감할수 없기에, 점점더  눈치를 보게됬다. 여기서 더 복잡해진건 그들 관점에서 나는 인색하고 자기중심적인 선배로 보일수도 있다는점이다. 챙겨주는게 없으니까.

Wednesday, 2 March 2011

나를 바라보는 나

부정적인 생각은 이럴때 엄습한다.

담배를 피고 왔을 때,
내 우물에 빠져 남을 바라보지 못할 때,
남과 단절되었다고 느낄때,
뭔가 불안정하다고 느낄 때.

나를 바라보는 나는 여러 모습을 지녔다.

부정적인 내가 나를 바라볼 때가 있고,
별 생각없는 내가 나를 볼때가 있고,
외로움에 굶주린 내가 나를 볼때가 있고,
긍정적인 내가 바라볼 때가 있고,
혹은 그런 내가 아예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나를 바라본다는 나는 누구일까?

과거 어린시절 "그게 대체 뭔 의미야" 라고 퉁명스럽게 비관적으로 바라보던 예전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게신거는 같은데.

담배

기분이 좋을 때 담배가 땡기지.
근데, 담배를 피면 안좋고 비관적인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어.
평소 생활하다가 담배를 찾는 것 처럼, 비관적이고 안좋은 생각들을 찾고 있는게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찾아올 때 마다 두렵다.
그것에 너무 쉽게 정복당하니까.
너무 쉽게 무너져서 내 하루 전부를 망쳐놓으니까.

Tuesday, 11 January 2011

서운함

아쉬운척 서운해하지마. 어떻게해서든 티내며 내색하려 하지도 말고. 그걸려고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 시원시원하게 말하면 재난이 물러간다고 한다.

Sunday, 9 January 2011

내 머릿속의 청중들, 그리고 사랑?

항상 내 상상속에는 청중이 있다. 내가 펼쳐나가는 상상의 나래를 바라보며 환호하는 관객들. 관객은 내가 사랑하는 주변사람들일 때도, 혹은 내가 두렵거나 시기하는 이들일 때도 있다.

..내가 사랑한다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누구냐 ?

과정과 결과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과물을 내놓는 것보다 훨씬 재밌다고 느꼈다.
무엇을 만들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들이 주는 재미가 있다.
환경을 셋팅하고, 설치시 발생하는 오류들을 해결해가고 내가 사용하는 툴에 익숙해지는 즐거움 또한 크다.

좋게 보자면, 난 결과보단 과정을 더 즐길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결과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의 심리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결과가 나오려는 순간 왜 흥미를 잃게되는지 모르겠다.